<편집자주>
산소, 질소, 아르곤 등으로 대변되는 산업용가스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업적 용도로 쓰이는 고압가스를 의미한다.
산업용가스가 쓰여지는 산업을 큰 범주로만 나열해도 반도체, 전자, 철강, 석유화학, 의료, 우주항공, 식음료, 환경, 용접 등 수십여종에 이르며 세부적인 업종이나 분야의 경우에는 일일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산업용가스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스종류의 다양함과 용도의 방대함에 새삼 놀라움을 느꼈을 것이며 일반인들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분야에까지 산업용가스의 손길이 미치고 있음을 속속 알게되면서 작지만 강한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특히 산업용가스는 현대 과학기술 및 산업의 발전에 따라 지금도 그 사용처와 분야가 계속 확대되고 있어 남보다 조금 더 주의 깊게 가스의 물성을 살피고 적극적인 연구개발노력을 진행한다면 막연히 어렵게만 생각하는 신규수요처 발굴도 자본력을 갖춘 중대형 기업들의 전유물이란 선입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에 산업용가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관련업체들의 신규수요처 발굴의지를 북돋고자 일반적이지 않은 용도로 사용되는 산업용가스의 국내외 사례들을 찾아 소개한다.
□ 문화재 멸균
문화재는 한 나라의 역사이자 국민들의 자긍심 그 자체이다.
이에따라 문화재의 발굴은 물론 발굴된 유물을 복원, 보존, 유지하는데 쏟는 각 국가들의 정성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문화재와 함께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고미술품이나 고문서들 또한 전문적이고 철저한 유지관리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문화재, 고미술품, 고문서, 서적 등을 해충과 병균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가스를 활용한 훈증법(燻蒸法)을 사용하는데 여기에 산화에틸렌(EO, C2H4O)과 브롬화메틸(CH3Br)의 혼합가스를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훈증가스, 특히 문화재와 같은 고부가가치 물품들을 대상으로한 훈증가스는 훈증되는 물건들이 조금이라도 변질.변색되지 않으면서 강력한 살균, 살충, 살곰팡이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이같은 관점에서 현존하는 최상의 살균가스로 불리우는 산화에틸렌과 브롬화메틸은 강력한 침투력으로 복잡한 구조의 문화재 심층부까지 고도의 살균능력을 발휘함은 물론 훈증후 신속히 증산(蒸散)하기 때문에 문화재, 고미술품을 위한 최상의 훈증가스로 꼽히고 있다.
□ 토목공사 및 수도관공사
대표적인 식품냉각용 초저온가스인 액체질소(LN2)와 액체탄산(LCO2)가 지닌 급속 냉각.동결 능력이 토목공사에도 활용되고 있다.
토목공사시 -196℃의 액체질소(LN2)나 -78.5℃의 액체탄산(LCO2)을 주변 토양에 분사, 작업공간 이외의 토양이 붕괴되는 현상을 사전에 방지함으로서 작업자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수도관의 보수공사에 있어 보수가 필요한 부분의 상.하측 수도관만을 액체질소 및 액체탄산으로 동결하면 인근지역의 수도공급을 중단하지 않고도 원활한 공사 진행이 가능하다.
같은 맥락에서 폭발물의 처리에도 액체질소가 쓰이는데 폭발물을 액체질소로 급속 동결시켜 전기장치, 뇌관 등의 작동을 제한한다.
□ 자동차 에어백
자동차의 충돌 및 추돌사고에서 운전자의 생명을 보호해주는 에어백에는 어떤 가스가 사용될까.
실제 에어백을 팽창시키는 가스는 질소(N2)지만 압축질소를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나트륨과 질소로 이루어진 ‘아지화나트륨(NaN3)’이라는 화합물이 사용된다.
질소가 약 65%가량 포함된 아지드화나트륨이 차량충돌시 폭발하면서 다량의 질소를 생성해내는 원리이다.[2NaN3(s) → 2Na(s) + 3N2(g)]
그러나 화약식 에어백이 폭발후 화약의 뒤처리나 오폭의 위험성이 제기되면서 화약의 사용량을 최소화한 가스식 에어백 보급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가스식 에어백에는 고압충전된 아르곤(Ar), 헬륨(He), 산소(O2) 등의 혼합가스가 사용된다.
차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운전석 에어백의 용량은 60리터(외산)~80리터(국산) 정도이며 운석석에 비해 차체와의 간격이 넓은 조수석은 120~150리터의 가스가 들어간다.
□ 날고기의 포장
소, 돼지 등의 날고기(생고기)는 신선도가 생명이며 신선도를 평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육질의 색을 보는 것이다.
대개 선명한 적색을 띌수록 신선도는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따라 날고기의 색 변질을 막기 위해 포장단계에서 산소(O2)를 함께 넣고 있다.
과자 등의 경우 산화방지를 위해 불활성가스인 질소를 넣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날고기는 선명한 색을 유지하기 위해선 산화작용이 필요하기 때문에 산소를 사용한다.
구체적으로 날고기 육질속의 미오글로빈(myoglobin)과 산소가 결합, 옥시미오글로빈(oxymyoglobin)을 생성하면서 선명한 적색을 유지시킬 수 있다.
이는 고기를 익힐 때 미오글로빈(적색)이 옥시미오글로빈(선명한 적색)으로 변해 글로빈헤미크롬(회갈색)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착안한 것이다.
산소와 함께 탄산(CO2)을 첨가하면 미생물 증식 억제 효과도 거둘 수 있다.
□ 가금류 도축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돼지 도축시 전기충격법을 사용해 왔다.
이 방식은 돼지가 전기에 감전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근육단백질 변형, 수분함량감소, 골격파손, 조직내부출혈 등이 나타난 저품질 돈육이 다량 발생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방법이 바로 탄산(CO2)을 활용한 도축법이다.
탄산도축은 일정량의 CO2를 계속 공급, 혈중 산소를 감소시켜 서서히 마취(기절)시킨 후 도축하는 것으로 선진국에선 이미 일반화되어 있으며 우리나라도 지난 8월경 축산기술연구소가 관련기술을 개발해 상용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돼지 1마리 도살에 필요한 탄산량이 약 2.5그램에 불과해 아직은 매력적인 신규수요처로 보기는 어렵다.
현존하는 국내 최대 도축장의 도축량이 하루 2천마리 수준으로 총 5㎏의 탄산이면 모든 도축을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돼지를 시작으로 소, 닭, 염소, 오리, 타조 등 모든 가금류(家禽類)에 탄산도축법이 확산된다면 새로운 신규시장으로 부각될 가능성도 크다.
□ 단무지 저장
일본과 중국음식에는 단무지가 감초처럼 자주 곁들여진다. 일반적으로 단무지는 무를 소금에 절임으로서 염분함량 10~18%을 만들어 장기간 저장이 가능한 식품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종주국인 일본에서조차 짠맛을 감소시킨 저염(low salted) 단무지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단무지 제조업체들이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개발한 방법이 질소(N2) 보존법이다.
절인 무를 질소와 함께 보관하면 질소와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염분이 6~8% 수준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 방식은 제품화 이전에 반드시 탈염(脫鹽)과 압착 공정을 거쳐야하는데 반해 질소에 보존된 단무지는 별도의 추가공정 없이 곧바로 제품화가 가능해 인건비 절감, 품질 향상등의 부가효과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세계최초로 단무지를 개발한 사람은 일본의 한 스님으로 이 스님의 이름(다꾸앙)을 빌어 일본에선 ‘다꾸앙’으로 불려진다.
□ 소 사료용 밀집
비용절감 및 경쟁력 향상을 위해 이제 축산업도 대량화.규모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특히 상업적 목적으로 소를 키우는 농장들의 경우 최소 수십마리에서 최대 수천마리에 이르기까지 대규모화되고 있으며 그만큼 밀짚 등 사료의 소비량도 막대하다.
대형 농장에서는 소의 사료용 밀집을 보다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암모니아(NH3)를 투입한 밀짚을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밀집이 쉽게 풀려 소들의 소화가 용이해지고 단백질 함량도 증가된다.
또한 이차적 발효를 방지하고 곰팡이 발생을 억제할 수도 있다.
암모니아의 량은 밀짚의 중량대비 약 3%로서 밀짚 1만톤에 약 3백톤의 암모니아를 혼합하면 된다.
□ 휘프 마가린 제조
마가린(margarine)은 크게 딱딱한 ‘경성(硬性) 마가린’과 부드러운 ‘연성(軟性) 마가린’으로 구분된다.
90년대말 이후 연성 마가린이 인체내 콜레스테롤 함량을 감소시키는 등 경성 마가린에 비해 인체에 유익하다는 연구결과와 함께 소비자들의 기호도 부드러운 마가린을 더욱 선호하게 되면서 연성 마가린 시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연성 마가린의 일종인 저칼로리 ‘휘프(whipped) 마가린’의 제조에 질소(N2)가 사용된다.
마가린 제조공정중 굳지 않은 액체상태의 마가린에 질소를 공급, 기포(거품)를 생성시켜 잘 저으면 반액체 수준의 부드러운 휘프 마가린이 탄생한다.
□ 귀중품 보관
보석은 찬연한 빛을 발할 때에 최고의 가치를 평가받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공기중의 산소와 산화작용이 일어나면 보석은 본연의 색채를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보석이나 증권, 고가의 미술품 등 귀중품의 보관시 공기접촉에 의한 산화를 막기 위해 질소(N2)를 분위기가스로 활용한다.
비닐봉투 등 밀폐된 곳에 귀중품과 질소를 넣는 방식이다.
고가의 미술품의 경우 현재 열(熱)로 인한 변형을 막기 위해 빛을 차단하거나 온도를 제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이에더해 산화방지용 질소의 사용도 추가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상황이다.
□ 립스틱.초콜릿 제조
식물성 기름은 그 자체로 쓰이기도 하지만 화장품, 세제, 제약, 식품 등 많은 분야에서 중요한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때 액체상태인 식물성 기름의 활용성 향상을 위해 수소(H2)를 강제로 첨가하는 수소화(Hydrogenation) 공정을 진행한다.
수첨반응에 의해 기름의 불포화지방산 성분이 포화지방산화 되면서 고체 또는 반고체 상태로 변하는데 기름냄새가 없어지고 녹는점이 높아지며 비누화값 및 요오드값이 저하되는 등 한층 안정된 물성을 갖은 원료로 재탄생된다.
이렇게 경화(硬化)된 원료유는 립스틱.마요네즈.초콜릿.마가린.버터.드레싱.크림.비누 등의 주요원료로 쓰여 산화, 변색, 변형을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일부 제약산업에서도 수소화공정이 도입되고는 있지만 공정이 복잡하고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분야여서 국내 제약업체들 대부분은 수소화공정을 마친 원재료를 수입하여 약품제조에 사용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기타
이외에도 항공기를 비롯 가혹한 조건에서 사용되는 타이어에는 기체질소를 충전하고 있으며 옷이나 카페트 등의 세탁을 위해 고압탄산을 활용한다.
무(無) 탄산음료를 담는 알루미늄캔 및 페트병의 경우 적정량의 액체질소를 떨어뜨려 내압을 상승시킴으로서 외형의 변형방지를 이룩하고 사체의 보존에 드라이아이스를 쓰기도 한다.
한편 초저온용기 제조업체인 ㈜한비가 액체질소의 수요처라는 점도 다소 특이한 부분이다.
공장부지내에 5톤형 저장탱크를 설치한 한비는 완성된 LGC의 성능실험을 위해 액체질소를 사용하고 있는데 단 한차례 충전한 후 버려지는 액체질소 사용량이 월평균 3~4백만원에 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