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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퐁과 도레이를 통해 본 화학기업의 혁신

케이탑 2009. 2. 12. 08:31

듀퐁과 도레이를 통해 본 화학기업의 혁신
홍정기 | 2006.07.07

급격한 환경 변화와 함께 화학기업들 사이에 혁신을 요구하는 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대표적 화학기업인 듀퐁과 도레이의 사례를 통해 화학기업의 바람직한 혁신 방안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NT, BT 등 혁신 기술의 발전, 에너지 및 환경 문제의 심화, 글로벌화 진전 등 화학산업을 둘러싼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기업들이 향후 전략 방향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주간경제 844호, ‘화학산업에 대한 5가지 고정관념’ 참조). 배럴당 70달러를 넘나드는 고유가는 기업들의 변신을 재촉하는 소리로 들리기만 한다.

 
많은 기업들이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막상 이를 실행하자면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환경 변화와 현상에 대해 정확히 인식해야 할 뿐만 아니라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기 위한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혁신을 추구하고 있는 듀퐁(DuPont)과 도레이(Toray)의 사례를 통해 화학기업들이 생각하는 혁신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듀퐁과 도레이의 선정 배경

 
그러면 왜 듀퐁과 도레이를 보아야 하는가? 우선, 듀퐁과 도레이는 각각 미국과 일본에서 혁신에 가장 적극적인 화학기업들로 알려져 있다. 에너지, 섬유 등 과거의 주력 사업을 버리고 파격적으로 바이오 기술 기반으로의 전환을 추구하고 있는 듀퐁의 전략은 이제 결실을 맺기 시작하고 있으며, 고유가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도레이는 과거 수십 년 간 공을 들여온 탄소섬유 사업이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르면서 세계 최고의 첨단재료 기업이 되겠다는 비전을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

 
성과의 높고 낮음을 떠나 이들 기업의 혁신 과정을 보면 분명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본과 미국 기업 간의 대비를 통해 문화적 배경에 따른 혁신 추진 상의 세밀한 차이점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듀퐁과 도레이는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적 화학기업들이다. 듀퐁은 1882년 화약기업으로 출발해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으며, 도레이는 1926년 동양레이온(Toyo Rayon, 1970년 Toray Industries로 사명 변경)으로 출발해 8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한마디로 산전수전을 다 거친 기업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어떻게 과거의 구조와 관행에서 벗어나 혁신 기업으로 거듭 날 수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학기업 혁신의 조건

 
듀퐁과 도레이의 사례만으로 화학기업 혁신의 조건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양사의 사례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공통점은 화학기업이 혁신을 추진함에 있어 충분히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 프론티어 정신

 
두 기업의 사례에서 가장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변화를 추종하기 보다는 주도하는 프론티어 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기술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에서 비롯되었으며, 그것이 전통 또는 기업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혁신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나일론, 테프론, 라이크라 등으로 대표되는 듀퐁의 독창적인 기술력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02년 이미 현재의 중앙연구소(기초 연구 담당)라 할 수 있는 ‘Experimental Station’을 설립하였으며, 이는 이후 창의적 제품 개발의 산실이 되었음은 물론 연구 중심의 전통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듀퐁의 R&D 수행에는 3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기술이 반드시 독창적이어야 하며, 둘째는 고객에 대한 제공가치가 명확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결국 장단기 R&D를 불문하고 철저하게 차별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탈락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항상 작동하고 있으며, 이것이 창의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지나친 연구지상주의를 경계하는 장치가 되고 있다.

 
듀퐁의 프론티어 정신을 잘 나타내는 사례는 환경정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2010년까지 전 세계 공장이나 연구소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10%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조달한다거나, 2010년에는 매출액의 25%에 해당되는 제품 제조에 필요한 원료는 식물 등 비고갈성 자원으로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이러한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며, 이는 듀퐁을 혁신 기업으로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도레이 역시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기술력이 강한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비록 섬유산업의 구조조정으로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으나,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서 최근 다시 기술을 통한 혁신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 그동안 글로벌 중심의 양적 성장 전략에 대한 수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21세기 들어 경제, 사회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기존의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5월에는 ‘Innovation by Chemistry’를 슬로건으로 하는 신경영 비전을 발표하였다. 기업활동 전 영역에서 ‘혁신과 창조’를 추구함으로써, 이를 성장과 수익으로 연결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전자재료, 복합재료 등의 전략적 확대사업은 물론 플라스틱, 섬유 등의 기반 사업에서도 첨단기술의 활용을 통해 고기능제품의 비중을 2010년까지 60%로 확대할 예정이이다.

 

● 기술 기반의 확장 

 
양사에 있어서 또 다른 특징으로는 BT, NT 등 혁신 기술에 대한 적극적 투자와 활용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조만간 화학산업의 기술 기반이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존 기술에 의한 혁신이 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기술 기반을 고집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기술의 깊이도 중요하지만 혁신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술의 폭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술 기반의 확장 여부는 더 이상 논쟁의 대상이 아니며, 이제는 기술 기반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화학기업에서 과학기업으로의 전환을 표방해 온 듀퐁은 기술 기반 확장에 있어서 가장 선구적인 기업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듀퐁이 내세우는 3가지 성장 경로 중 하나가 통합과학(Integrated Science)일 정도로 듀퐁은 다양한 기술 기반의 융합과 이를 통한 혁신기회 창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Sorona’라는 폴리머 제품을 들 수 있다. 현재 이 제품은 석유계 원료로 제조되고 있지만, 듀퐁의 꾸준한 바이오 기술 연구로 내년부터는 옥수수 등 식물성 원료(Bio-PDO)로 대체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듀퐁은 영국의 Tate & Lyle과 합작으로 현재 원료 공장을 건설 중이며, 금년 말부터 상업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듀퐁에 비해 규모나 시기는 뒤지지만 도레이 역시 새로운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2001년 도레이는 창립 75주년을 맞아 NT와 BT의 융합기술을 연구하는 ‘New Frontier 연구소’를 설립하기로 결정, 2003년 완공하였다. 도레이는 부족한 역량을 단시간 내에 극복하기 위해 자체 인력을 확충하는 동시에 공동 연구 등을 통해 유능한 외부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향후 이 연구소에서는 DNA 칩, 약물전달시스템, 세포치료, 생물공정, 나노구조재료 등을 연구할 예정이다.

 

● 결단과 끈기

 
기본적으로 혁신은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기술 개발에서 상업화까지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소재 산업에서는 혁신의 과정이 마라톤에 비유될 정도로 길고 힘들기 때문에 결단과 끈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1990년대 후반 듀퐁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향후 바이오를 새로운 기술 기반으로 육성하겠다고 했을 때 이를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2002년 창립 200주년을 맞으며, 듀퐁은 새로운 100년을 담당할 사업모델로 바이오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과학기업(Science Company)으로의 전환을 다시 한번 명확히 하였다. 이후 듀퐁은 종자, 농약 등 농화학 부문은 물론 다른 사업 부문에서의 바이오 기술 접목을 일관성 있게 시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2007년에는 바이오 기술 기반의 매출 비중을 3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듀퐁의 계획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2012년까지 바이오 기반 소재의 상업화 계획을 마련했으며, 시장 확대를 위해 합작 투자나 라이센스 공여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방침이다. 최근 영국의 석유기업인 BP와 바이오 연료(바이오 부탄올) 사업화를 위한 제휴를 맺었으며, 향후에는 접착제, 화장품, 의약품 등 고부가가치 분야의 바이오 제품 개발도 추진할 예정이다.

 
듀퐁이 불연속적인 혁신을 추구하는 데 비해 도레이는 점진적인 혁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듀퐁과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고용 보장에 대한 관행이 강한 일본 기업들의 경우 급격한 구조조정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양사의 혁신에 대한 신념이나 의지는 전혀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첨단 소재를 육성하겠다는 도레이의 의지는 탄소섬유 사업의 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1971년 생산과 판매를 시작한 도레이의 탄소섬유 사업은 포트폴리오 상에서 30년이 넘게 신사업의 자리를 지켜왔다. 서구기업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러나 무게는 철의 1/4에 불과한 반면, 강도는 철에 필적하고, 탄성과 기후 변화에 대한 내성도 강한 탄소섬유에 대한 도레이의 신념은 결국 보상을 받고 있다. 고유가와 환경에 대한 규제 강화로 항공기 연비 절감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최근 보잉과 2021년까지 향후 16년간 총 7천억 엔에 달하는 탄소섬유 복합재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탄소섬유만이 아니라 10년, 20년 앞을 내다보고 미래의 수익을 견인할 제품을 육성하는 것은 도레이에 있어 전혀 생소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유행에 따르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정신을 도레이 사람들은 ‘도레이流’라고 부르고 있다.

 

● 수익 사업의 강화

 
혁신을 추진한다고 해서 기술 개발에만 중점을 둘 수는 없다. 안정적 수익창출원을 확보하는 것 또한 혁신을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듀퐁의 코팅 사업과 기능성 재료 사업, 도레이의 섬유 및 플라스틱 사업이 양사의 대표적인 수익 사업들이다. 이들은 수익 사업에서의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글로벌 전개에 나서는 한편 자동차 분야 등 지속적인 용도 개발을 통해 수익창출력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편 수익 사업 강화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양사가 공통적이나 구체적인 추진 스타일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가 나타난다. 듀퐁은 기반 사업 강화에 있어 철저한 목표 관리를 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1999년 이후 식스 시그마 기법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기준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구조조정을 통해 즉각적으로 비효율을 제거한다. 예컨대 금년에는 기능성 코팅 사업의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효율이 떨어지는 생산 및 연구 시설이 폐쇄되고, 관련 인원을 삭감함으로써 약 1억 7천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계획이다.

 
도레이의 경우는 파트너십을 통해 기반 사업의 안정적 성장 기반을 구축하는 데 상대적으로 중점을 두고 있다. 앞서 설명한 탄소섬유 사업에서 듀퐁과의 장기 공급 계약 체결, 지난 6월 섬유 분야에서 의류업체인 유니클로와의 향후 5년간 소재 공급 및 개발 제휴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4년 마츠시타전기와의 PDP 합작투자(마츠시타의 4번째 설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투자 수익성도 고려되었겠지만 수요기업과의 전략적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자사 PDP 재료 사업(감광성 페이스트)을 강화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혁신은 멈추지 않는다  

 
듀퐁의 홀리데이 회장은 “지난 200년간 우리는 스스로 과거와 결별하는 의사결정을 지속해왔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0년이 넘는 역사에 있어서 듀퐁은 환경 변화에 항상 능동적으로 대응해왔고 그것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원동력이 되었다. 도레이의 혁신 역시 철저한 자기 부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02년 NT21(New Toray 21)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도레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조직, 사업방식 등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스스로 진단했다. 이러한 점에서 듀퐁과 도레이의 혁신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그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듀퐁과 도레이의 혁신 과정은 변화의 방법이나 속도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나, 어느 편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업들 각각이 스스로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앞서 제시한 4가지 혁신 포인트는 듀퐁과 도레이를 포함, 모든 화학기업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시사점이라고 판단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의 중심에 서겠다는 프론티어 정신이다. 기업마다 자원 및 역량의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자원이나 역량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것이 혁신의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기업이 혁신을 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한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이 뛰어난 것이다. 최근 경영환경이 악화되면서 국내 화학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모든 기업들이 근본적인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고, 이를 혁신의 출발점으로 삼는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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